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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사회적 거리는 '거리두기'가 아니라 '거리를 느끼는 것'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란 비말을 통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타인과 2m의 거리를 두는 것을 뜻한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하는 2m의 거리는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자기방어적 영토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타인과 2m 거리를 유지하여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산물일까? 그렇지 않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인간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왔고, 그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 각국의 정부가 권고하거나 캠페인을 벌이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거리두기’는 감각적 반응

에드워드 홀은 “조류와 포유류에게는 같은 무리 간에 제각기 점유하고 방어하는 영역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유지하는 일련의 일정 거리도 있다”고 한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공간 감각은 육감(肉感)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로 근접 수용기관인 피부와 근육, 원격 수용기관인 눈과 귀, 코를 통해 객체와의 거리를 지각한다. 그리고 자신과 객체의 관계와 환경에 대하여 감각적으로 반응하며, 능동적으로 공간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와 객체 사이의 거리두기는 고도로 민감하며,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개념은 내면화된 행동으로 나타난다.


동물들도 ‘거리두기’를 한다

일찍이 동물행동학 연구분야에서 ‘거리두기’는 ‘영토권’이라는 개념과 함께 다뤄져 왔다. ‘영토권’은 동물행동 연구의 기본 개념 중 하나로서 한 생명체가 특징적으로 한 영역을 설정하여 동일 종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방어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동물심리학자 헤디거(Heini Hediger)는 “동물들은 영토권에 의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식량이나 적의 출현을 즉시 알릴 수 있다. 즉 공간의 밀도를 규제함으로써 종의 번식을 보장해준다.”고 하였다. 유사한 맥락으로 ‘영토권’은 종의 보호, 열성 개체 노출, 환경의 과잉 착취 방지 등에 초점을 두어 설명되어 왔다. 다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동물들이 ‘영토권’을 확보하기 위한 거리두기는 생존이 걸린 대단히 중요한 본능인 것.

동물들의 ‘거리두기’는 생존이 걸려 있는 행동체계이다.


동물들의 ‘거리두기’ 법칙

헤디거는 동물들이 생존을 위해 조정하고 유지하는 일정 거리를 도주 거리, 치명적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로 분류한다. 이 중 도주 거리와 치명적 거리는 다른 종의 개체들이 마주칠 때 이용되는 반면, 개인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는 같은 종의 개체끼리 상호작용하는 동안 관찰할 수 있다.

도주 거리는 다른 개체의 접근에 위협을 느껴 도주 반응을 시작하는 거리이다. 그리고 치명적 거리는 공격거리와 도주거리가 구분되는 원형의 협소한 지대를 의미한다. 동물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경험이 있다면 동물들의 ‘거리두기 법칙’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냥을 하러 온 사자의 접근에도 움직이지 않다가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도망가는 영양을 떠올려 보자. 영양은 자신이 도주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사자의 접근을 허용하고, 사자는 계속해서 치명적 거리를 좁혀간다. 이들 거리를 인식하는 것은 생존이 걸려 있는 본능이기 때문에 대단히 정확하다.

개인적 거리는 동일 종들 사이에서 보통 유지하는 거리를 두고 헤디거가 붙인 용어이다. 동물들의 위계 관계는 매우 엄격하다. 따라서 위계에 따른 거리두기는 동일 종이 평화와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암묵적 약속인 것.

동물들의 사회적 거리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거리가 아니라 “무리의 한계를 벗어나 불안감을 갖기 시작하는 심리적인 거리”라고 에드워드 홀은 주장한다. 따라서 종별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 개체라도 성장 시기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확보하는 거리, 즉 공간유지법칙이 대부분 행동 요인인 것에 반해 사회적 거리는 심리요인인 것이다.


동물들의 ‘사회적 거리’는 한 집단을 결속시키는 보이지 않는 끈

인간의 사회적 거리는 자신의 근접 수용기관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거리에서 제각기 차단·고립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전 세계가 동참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역시 모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차단과 고립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사회적 거리의 의미는 좀 다르다. 내부지향적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홀은 동물의 사회적 거리를 “한 집단을 결속시키는 보이지 않는 끈”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강제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사회적 거리’의 의미가 차단과 고립일지 접촉 유지 욕구일지 묻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