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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때 '경계→심각' 6개월 소요…"중장기적 대책 없이 무조건 격상“ 비판도
'대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방역 구멍’ 지자체 움직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 말도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단계’로 올려 대응체계를 대폭 강화했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너무 이른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작 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에서조차 전역에 최고 위기단계를 발령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구 신천지예수교회와 청도 대남병원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확진환자가 나왔다고 해서 위기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한 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국내 상황이 여전히 통제될 수 있으며 ‘팬데믹(pandemic·세계적 유행병)’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WHO, 국내 상황을 팬데믹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WHO는 국제보건규정(IHR)에 따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PHEIC)‘를 선포한다. 국제 비상사태를 뜻하는 PHEIC은 질병이 국제적으로 퍼져서 다른 나라의 공중 보건에 위험이 된다고 판단될 때 선포한다.

위기선언 조건은 ▲공중보건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경우 ▲사건이 이례적이거나 예상하지 못한 경우 ▲국가 간 전파 위험이 큰 경우 ▲국제 무역이나 교통을 제한할 위험이 큰 경우 등의 요건 중 2개 이상 해당할 때다.

다만 1개 상황만 해당하더라도 긴급위원회 논의 결과 필요하다면 위기 상황 선포를 권고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중국과 홍콩 등 아시아를 강타한 신종플루와 조류독감(H5N1), 에볼라 등 5차례 국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코로나19가 6번째다.

그러나 이는 WHO의 전염병 경보 6단계 중 사람들 간 전염을 통해 확산될 수 있는 위험이 상당하고, 세계적인 유행병 초기 단계인 4단계에 준하는 정도다.

WHO는 전세계적 감염병 대응단계를 ▲1단계 동물사이의 전염 ▲2단계 소수 사람 사이의 전염 ▲3단계 다수 사람 사이의 전염 ▲4단계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수 있는 초기상태로 에피데믹(Epideimic) 단계 ▲5단계 최소 2개국에서 인체감염 발생 ▲6단계 2개국 이상에서 인체감염 발생 대유행(Pandemic)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WHO가 가장 최고 수위인 6단계 위기경보를 내린 것은 2009년 신종플루 때가 유일하다.

WHO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통제될 수 있으며 ‘팬데믹(pandemic·세계적 유행병)’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팬데믹’은 "우리가 바이러스를 더는 통제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이 단어를 무심코 쓰는 것에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게 WHO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의 생각이다. 불합리한 공포와 낙인을 증폭해 각국의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단어 사용은 신중해야 하며, 현재의 세계적 상황을 늦춰서는 안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신종플루와 코로나19, 무엇이 다를까

그렇다면 신종플루 때와 비교해 현재의 코로나19 유행상황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우선 우리나라는 보건당국이 자체위기평가회의를 거쳐 감염병 위기 경보를 발령한다. 감염병 위기단계는 모두 4단계로, 1단계는 ▲관심(Blue)으로 평상시 해외에서 신종 감염병의 발생, 유행을 관찰하는 단계를 말한다. 2단계인 ▲주의(Yellow)는 이런 신종 감염병의 국내 유입됐을 때, ▲경계(Orange)는 3단계로 국내 유입된 해외 신종감염병이 일부 지역이나 사람에 국한해 제한적으로 전파됐을 때 발령된다.  4단계인 ▲심각(Red)은 해외 신종감염병이 지역사회 전파 또는 전국적 확산을 보일 때 취해진다.

2009년 신종플루 당시 정부는 첫 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난 2009년 5월 1일 ‘주의’ 발령을 내렸고, 두 달 뒤인 7월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8월 15일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이후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최고 위기경보인 심각단계로 격상한 것은 11월 3일에서다. 첫 번째 확진환자가 발생하고, 심각단계로 격상되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당시 신종플루 국내 확진환자 수는 75만명, 사망자 수는 263명에 달했지만 치료제인 타미플루(Tamiflue)가 있었고 백신도 개발돼 11월부터 접종이 시작되면서 확진환자와 사망자 모두 감소효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난달 8일 36세 중국인 여성이 유사증세를 보이자 '관심' 주의보를 발령했고, 지난달 20일 처음으로 중국 우한시에 거주했던 35세 여성이 국내에서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주의'로 격상했다. 이후 일주일 뒤인 27일 확진환자가 4명으로 늘어나면서 한 단계 올려 ‘경계’로 상향했다.

더욱이 대구·경북지역을 시작으로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지난 23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수위를 올렸다. 심각단계 격상까지 한 달이 채 안 걸린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처음으로 발병한 중국 또한 가장 높은 전염병 위기단계를 1월 21일 30개 성 및 자치구에만 내렸고 2월 23일 기준으로 윈난성, 광동성, 산시성, 귀주성 등 4개 성의 경우 오히려 완화했다.  

문제는 코로나19는 신종플루와 달리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고수위인 ‘심각’으로 상향했지만 반드시 중장기적인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하는데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달라지는 것은 지휘체제가 보건복지부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강화되는 행정적인 조치 이외 방역과 관련한 부분은 달라질 게 없다.

위기단계가 격상 된 후 내려진 집단행사 개최 제한, 다중밀집시설 이용 제한, 학교 및 어린이집 등 휴교, 기업, 공공·민간단체 복무 등 활동에 관한 조정은 심각으로 올리지 않고서도 가능한 조치인 만큼 정부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 방역 ‘구멍’ 발생 막기 위한 조치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심각단계로 격상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바로 지자체들의 방역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이른 판단일 수 있으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보건당국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협조가 부족한 지자체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방역 구멍’을 막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였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정은경 본부장도 위기단계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것에 대해 대구·경북지역에서 진행 중인 지역사회 전파가 전국으로 확산되기 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신천지 교인들의 확진사례가 대규모로 폭증한 대구지역의 경우 지자체 협조가 상당히 중요한 상황이나 역학조사 등 협조 미흡으로 방역에 어려움이 있어 정부 차원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에 정부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자문을 해주고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라 협조하지 않는 지자체들 때문에 심각으로 격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새어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대구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막아내지 못하면 중국 후베이성처럼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대구시를 어떻게 하느냐가 우리나라가 사느냐, 죽느냐의 절대적인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