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을 소개한 바 있다.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일차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법적 권리가 무엇인지,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기간은 언제까지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고, 그 다음은 그렇게 보장되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문제가 남을 것이다. 법적 권리 중에는 권리자의 순간 판단에 따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권리 포기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도 존재하므로 특히 주의를 요한다.

A 차량의 과실로 경미한 접촉사고가 발생했는데 사고 직후 상대방 B가 차량에서 내리며 다짜고짜 욕설을 한 사건이었다. 너무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담자는 상대방을 모욕죄로 고소했는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대방인 B가 합의를 제안해왔다. 상담자가 고소를 취소해주는 조건이었다. 고민 끝에 상담자는 고소를 취소했지만 불행히도 상대방은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상담자에게는 다시금 상대방을 고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정담은 '없다'이다.

범죄 중에는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죄가 있다.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를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친고죄는 형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하고 법원에 기소를 할 수 있는 범죄이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형사 사건 발생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수사를 진행하고 법원에 기소를 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더 이상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그 절차가 종결되는 범죄이다.

기간과 관련하여 친고죄는 원칙적으로 범인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면 더 이상 고소하지 못한다.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는 수사 중에도 가능하고 사건이 기소된 이후에는 가해자에 대한 1심 판결 선고 시까지 할 수 있으며 전자의 경우에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어, 후자의 경우에는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되어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친고죄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범죄들에는 사자명예훼손죄(형법 제308조), 모욕죄(형법 제311조), 업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317조) 등이 있고, 폭행죄(형법 260조), 협박죄(형법 제283조), 명예훼손죄(형법 제 307조) 등은 대표적인 반의사불벌죄이다.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에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 하는 것은 고소 취소와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의 철회에 관한 것이다. 친고죄는 특정 범죄사실에 관하여 가해자를 고소한 피해자가 이후 고소를 취소하면 다시 고소하지 못한다. 반의사불벌죄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하면 이후 이를 철회하지 못한다. 피해자의 판단과 그에 따른 결정에 의해 형사 절차가 완전히 종료되는 것이며 피해자는 더 이상 가해자의 처벌을 구할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사안으로 돌아가 보면 A는 상대방인 B를 친고죄인 모욕죄로 고소하였고, 경위야 어떻든 이에 대하여 고소 취소를 하였으므로 수사 절차는 그대로 종료되고 A는 해당 범죄사실을 이유로는 다시 가해자를 고소할 수 없다.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가 가지는 이러한 특징을 이유로 이에 해당하는 범죄들의 경우에는 다른 범죄들에 비해 가해자가 피해자와의 합의를 위해 더욱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의 합의로 곧바로 형사 처벌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피해자의 경우에는 합의 과정에서 가해자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입은 손해를 별도의 민사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배상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크므로 피해자가 가지는 고소 취소 또는 처벌불원의 의사표시와 관련한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절히 행사할 때 슬기롭고 원만하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