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사고는 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가
남 탓 사고방식은 세계 공통
인근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우리’ 공장은 막연히 절대 불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방화 설비를 점검하거나 보강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홍수 피해 뉴스를 접하면서도 자기 주거 지역은 그저 안전하리라 믿어 보수하지 않는다. 야영이나 취사가 금지된 계곡에서도 자신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속된 대피 권유에도 ‘나와 우리는 예외’라며 따르지 않는다. 사고가 난 다음에는 이런 이들은 보통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들은 산업재해ㆍ전염병ㆍ환경 사고ㆍ전쟁과 같은 재난이나 재해가 나의 일이나 우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리적·심리적으로 나와 먼 장소에서 발생하는 남의 일 또는 일부 부주의한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재난ㆍ질병ㆍ사고가 혹시 발생하면 비난할 수 있는 남을 찾고 외부를 탓하는 관습과 심리 경향은 세계 공통적이다. 특정 문화권에 그치거나 시대의 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15세기 매독과 1980년대 초 에이즈가 나타났을 때 대중은 ‘내가 아닌 남에 의한 것’이라고 봤다. 영국인들에게 매독은 성관계가 문란한 프랑스병, 프랑스인들에게는 독일병, 플로렌스 사람들에게는 나폴리병이었다. 이 병은 남태평양 타히티 원주민 사이에는 영국병으로 알려졌다. 에이즈를 서구에서는 게이(gay)들의 잘못된 성생활에 기인한다거나 노란 원숭이에서 전염된 아프리카 풍토병이라고 여겼다. 아프리카인들은 거꾸로 성생활이 문란한 서구인들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믿었다.
콜레라가 1830년대 초 영국에서 처음 유행했을 때는 ‘아시아 콜레라’로 불렸다. 소아마비는 초창기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더러운 생활습관 탓으로 돌려졌다. 하와이에서 발견된 나병은 매개자로 중국인이 지목돼 이들을 서양문명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었다.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은 신체 또는 정신적 질병이 ‘외부’ 악령이 침입한 결과라고 믿었다.
외부를 지목하거나 비난하는 현상은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심리적으로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작업자의 경우 숙련자일수록 ‘객관적으로 측정된 위험’의 정도에 비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위험’의 정도가 현저하게 낮다. 연구에 의하면 원전 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과 관련된 방사선 위험이 흡연이나 비행기나 스키로 인한 사고위험보다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 전문가들조차 상대적 위험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은 연령ㆍ성ㆍ교육ㆍ직업과 무관한 광범위한 현상이다. 건강과 안전 위험에 대해 95% 이상의 사람들은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다. 이것을 ‘낙관적 편견(optimism bias)’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규모 위험에 대해 직장에서 동료를 포함한 남들보다 자신은 훨씬 영향을 적게 받을 것으로 상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과 사고와 재난의 단서들을 경시하게 된다.
안전사고의 경고ㆍ징후가 있더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느끼거나, 발생하더라도 예측만큼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느낀다. 이 모든 믿음이나 상상은 왜곡된 인식이다. 집단의 구성원은 누구나 불행의 확률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평균적인 사람보다 훨씬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자연을 정복한 결과 현대사회는 풍요와 더불어 온갖 위험요인이 도처에 널린 위험사회가 됐다. 현대사회에서는 위험에 관한 지식이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며, 대중은 항상 위험 자각을 일깨우는 이미지와 언어로 둘러싸여 있다. 대중매체가 전파하는 이미지와 언어는 마음에 뚜렷하게 남아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갖는다. 대중매체가 위험에 관한 남 탓을 더 줄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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