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작업 도중 추락해 사망한 경우 회사가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다면 피해의 상당부분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특히 이번 사고와 관련해 승강기 업체는 기소돼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민사법원은 피해자보호 원칙에 따라 사용자책임 면책규정을 엄격하게 해석, 회사 측의 과실을 인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안전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산업재해와 관련해 기업의 책임을 한층 더 강화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건설현장 추락사 수십억대 소송

25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월 서울 응암동 소재 다세대주택 신축공사와 관련해 현장소장으로 시공을 맡은 김모씨는 O사에 승강기 설치공사 도급을 줬다. 넉 달 뒤 승강기 공사 현장책임자인 O사 직원 이모씨는 승강기를 설치하기 위한 부품 등을 옥탑 기계실로 운반하는 '양중작업'을 A씨에게 재도급했다.

그런데 양중작업 일환으로 A씨가 7층 기계실에서 옥탑 천장에 호이스트(공사용 승강기) 전동모터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A씨는 천장 고리에 설치한 호이스트 전동모터에 체인을 걸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이스트 전동모터 연결고리 핀이 이탈해 모터가 떨어지면서 1층으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A씨와 팀을 이뤄 1층에서 보조작업을 하던 B씨 역시 전동모터 추락의 충격으로 골절상을 입고 사지가 마비됐다.

사고 당시 A씨가 작업하던 7층에는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난간이나 안전대를 걸 수 있는 설비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B씨가 작업하던 곳에는 낙하물 방지망 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후 A씨 유족과 B씨는 사고 이듬해 "추락 및 낙하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O사와 O사 직원으로 승강기 공사 현장책임자인 이모씨, 도급인인 김모씨를 상대로 "연대해서 각각 1억3800여만원과 21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안전조치 책임자.회사 연대책임

재판 과정에서 O사는 "작업 특성상 안전장치 설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맞서왔다. 특히 O사는 이번 추락사와 관련, 양벌규정에 따라 사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됐으나 벌금형이 내려진 이씨와 달리 항소심에서 이씨의 관리감독을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를 근거로 O사는 사용자 면책을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4부(이균용 부장판사)는 "피고들은 연대해 A씨 유족에게 6500여만원을, B씨에게는 6억4600만원을 지급하라"며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관련 형사사건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사재판에 있어서도 유력한 자료가 되지만 민사재판에서 제출된 다른 증거에 비춰 형사판결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인정할 경우 이를 배척할 수도 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어 "직원이 사고를 일으킨 경우 회사(사용자)의 감독상 무과실을 쉽게 인정하게 되면 사용자책임제도에 의한 피해자 구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돼 버린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사용자에게 선임 및 감독상 과실이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이번 사고에 회사 측의 민법상 사용자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형사사건에서는 검사가 사용자의 직원에 대한 주의.감독 여부의 입증책임을 부담하지만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에서는 피해자보호원칙에 따라 사용자 본인이 입증책임을 부담하는데 직원을 제대로 감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현장소장으로서 승강기공사 진행내용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한 김씨에 대해서도 불법행위에 따른 공동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추락 방지조치를 요구하지 않은 점과 B씨가 상·하부 동시작업 금지 의무를 위반한 점 등을 감안해 피고들의 배상책임을 각각 60%와 70%로 제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