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가 발생한 지 하루 만에 고양시청이 대책본부를 텅 비웠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사고 하루 만에… 텅 빈 대책본부

고양종합터미널 화재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27일 유족들은 대책본부가 꾸려진 고양시청을 찾았다가 망연자실했다. 대책본부는 텅 비어 있었고, 시장을 만나려 했지만 선거운동에 나가 만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현장감식이 진행 중인 고양종합터미널 앞에서 만난 유가족 10여명은 사고 수습과 관련해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신수진씨는 “서로 수소문해서 어젯밤에 어두운 야외 벤치에 모여 대책회의를 했는데, 하루가 지났지만 유족들은 사고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오늘 오전 9시쯤 시청에 마련된 대책본부를 찾아갔지만, 고양시장은 선거운동을 나가 아직까지 책임자를 만나지 못했다”며 분노했다.

사고로 동생을 잃은 정모(59·여)씨도 “어느 부서가 사고 수습을 담당하는지도 모르고, 누구와 상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며 “장례 절차와 대책에 대해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유족들뿐만 아니라 부상자 가족들도 관계자로부터 안내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사고로 어머니가 뇌사 판정을 받은 이모(47)씨는 “어제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현장을 찾았을 뿐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다”며 “아버지도 화재에 그을리고 기침 증상이 있어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주사 한 대 맞고 대기실에서 3시간 가까이 앉아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고양시청 관계자는 “고양시장이 지난 9일부터 선거에 돌입해 부시장이 업무를 대신하고 있고, 사고 후부터 현장에서 수습을 지휘하고 있다”며 “관련 업체와의 협의가 늦어졌지만 27일 오후 동국대 일산병원에 분향소를 마련한 뒤 관련 업체 측에서 장례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방장비 끄고 버젓이 영업 큰 문제”

터미널 지하 1층에서는 내부 구조 변경을 위한 방화구획 변경 공사가 지난 8일부터 진행됐으며, 이 때문에 소방설비를 정지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CJ푸드빌은 이곳을 아웃렛 푸드코트로 사용하기 위해 음식점 칸막이 등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는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만나 “지하 1층에서 방화셔터와 제연설비 등을 정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소방장비를 끄고 진행하는 공사이기 때문에 시 당국에 보고가 된 상황이라 절차적인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서 소방장비를 끄고 공사가 진행 중인데도 위층에서 정상 영업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화설비와 피난설비 차단은 점검할 때만 할 수 있다”며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방화구획을 변경하는 공사였다면 소방 공사를 새로 하는 건데, 화재 위험이 있는 작업을 사람들이 건물에 있을 때 하면 안 된다”며 “공사 신고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고양시청이 관리감독에 소홀했는지도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검·경, 국과수, 소방당국, 전기안전공사, 안전보건공단 등의 전문가 50여명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화재 현장 감식에 들어갔다. 이들은 소방안전시설 정상 작동, 작업 간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특히 ▲불꽃이 튈 수 있는 그라인더·용접기 사용 여부 ▲가연성 소재 사용 여부 ▲가스를 잠그고 공사했는지 등을 살펴봤다.

한편 심장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심폐소생술로 호흡을 회복했던 신복자(71·여)씨가 이날 오후 숨져 이번 화재 사고의 사망자는 8명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