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새끼 포유류 독립하는 가을에 새 서식지 찾아 이동 중 희생
ㆍ국도·산악 지나는 고속도로 등 생태로 끊긴 곳서 사고 빈발
ㆍ운전자 ‘저속·안전 운행’ 최선

  
 고속도로나 한적한 지방도로를 차로 달리다 깜짝 놀라는 광경이 있다. 자동차에 치여 죽거나 차 바퀴에 짓밟혀 흔적만 남아 있는 야생동물의 사체, 이른바 로드킬(Road Kill)이다. 아침·저녁 쌀쌀해지고 낮 길이도 짧아지기 시작하는 9월부터 로드킬도 부쩍 늘어난다. 어미 곁을 떠나 독립하는 어린 동물들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나서는 일이 많고, 야생동물의 활동도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야외 나들이가 늘어나는 것도 가을에 로드킬이 많아지는 이유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제출받은 지난해 포유류의 로드킬 발생 현황을 보면, 확인된 사체 772개체 중 269개체(33.7%)가 가을(9~11월)에 집중됐다. 여름(6~8월)에는 176개체(22.8%), 봄(3~5월)에는 159개체(20.6%)가 목숨을 잃었고, 동물들의 움직임이 줄어드는 겨울(1~2월, 12월)에는 107개체(13.9%)로 로드킬도 감소했다.
 
가을에는 특히 소형 포유류의 로드킬 희생이 많았다. 너구리(73개체)·다람쥐(57개체)·청설모(31개체) 등이 대표적이다. 너구리의 로드킬이 많은 이유로는 하천변·농가 등 주요 서식지가 도로 인근에 있고, 5~6월에 태어난 새끼가 어미와 함께 지내다 가을철에 분산하면서 새 서식지를 찾아가다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물자원관 서문홍 연구사는 “어느 정도 성장한 너구리 새끼들이 가을쯤 어미에게서 독립해 원래 살던 곳을 떠나가는데 안 가본 길을 가다보니 사고를 당할 가능성도 커진다”며 “나이를 먹고 경험이 많은 동물들도 사고가 나지만, 어린 개체들이 로드킬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포유류는 가을철과 봄철 번식기에 로드킬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며 “특별히 이 시기에는 운전자들이 야생동물 출현이 잦은 도로에서 서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생물자원관에서는 환경부 소속인 야생동물실태조사원 27명이 매달 한차례씩 차를 타고 육안으로 지방도로, 국립공원 내 도로, 국도 등 294개 지점에서 직접 확인한 로드킬 현황을 집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 78종 1234개의 사체가 확인됐다. 너구리가 192개체로 가장 많고, 다람쥐 143개체, 고라니 132개체, 족제비 129개체, 꿩 71개체, 유혈목이 62개체, 멧비둘기 60개체, 청설모 59개체, 까치 38개체, 누룩뱀 35개체 순이었다.
 
2011~2013년 3년간 집계된 숫자는 다람쥐 569개체(14.4%), 너구리 538개체(13.6%), 족제비 418개체(10.6%), 고라니 364개체(9.2%), 청설모 243개체(6.2%) 순으로 로드킬이 많았다.
 
파충류도 지난해 로드킬을 당한 182마리 중 111마리(61%)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8~10월 사이 목숨을 잃었다. 종별로는 유혈목이가 38개체로 가장 많고, 누룩뱀(21개체)·쇠살모사(18개체)·능구렁이(17개체)의 로드킬 발생 빈도도 높았다. 유혈목이 같은 파충류는 여름철 비가 내리고 나서 체온 조절을 위해 도로 주변에서 볕을 쬐던 중 희생되는 경우가 많고, 늦가을에는 동면을 위해 낮은 지대에서 높은 지대로 이동하던 중 로드킬이 많이 발생한다.
 
로드킬 동물들은 계절에 따라서도 몇가지 특징이 있다.
 
봄철에는 비가 내린 뒤 짝짓기하러 이동하다 희생당하는 양서류가 많다. 지난해 생물자원관이 확인한 로드킬 파충류 66개체 중 무당개구리·북방산개구리·물두꺼비 등 40개체가 4~6월 사이 목숨을 잃었다. 여름철에는 개구리들이 가로등에 달라붙는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몰려들다가 도로에서 로드킬을 입는 경우가 많다. 여름철엔 참새·직박구리 등 조류의 로드킬도 많다. 새들은 대개 둥지를 옮기던 중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로드킬된 개구리를 먹기 위해 날아와 앉아있던 새가 차에 치여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도로공사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고속도로에서 집계한 로드킬 발생 건수는 1만819마리에 달한다. 이 중에는 고라니의 수가 9089마리(84.0%)로 가장 많다. 공주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김희종 선임수의사는 “로드킬 당한 고라니의 상당수는 태어난 지 1년 미만인 경우”라며 “고라니가 야행성인 데다 활동 반경이 넓어 도로를 건너다 사고를 많이 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속도로(도공 통계)에서는 고라니가, 국도·지방도로(생물자원관 통계)에서는 너구리·다람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양서·파충류와 조류는 로드킬을 당해도 공식 통계로 잡히지 않을 때가 적잖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상대적으로 작은 동물들의 사체는 금방 흔적조차 사라지는 일도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국도로공사의 자료를 보면 2009~2013년 사이 로드킬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고속도로는 중앙선(1849건)과 중부선(1839건)이다. 그 뒤로 영동선에서 986건이 발생했고, 경부선 901건, 당진대전선 885건 순이다.
 
도로공사가 전국에서 로드킬 빈발 구간으로 꼽은 8곳에도 중앙선은 남원주IC 부근, 신림IC 부근, 남제천~제천IC, 남제천IC 부근 등 4곳이 포함됐다. 로드킬이 많은 고속도로는 주변에 동물들이 많이 서식하는 산림지대가 많은 곳이다. 연간 3건 이상 로드킬이 발생하는 229개 구간 중 다수가 산악지형이 많은 고속도로와 강원도 내 고속도로에 속해 있다.
 
확인된 사체만 해마다 20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의 희생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로드킬의 책임은 도로와 서식지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환경부·산림청 등이 1차적으로 져야 하지만, 당장 로드킬을 쉽게 줄이는 방법은 운전자가 조심하는 것이다. 동물뿐 아니라 운전자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내비게이션에서 ‘동물 출현이 잦은 곳’이라는 안내가 나오면 속도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2년 한해 동안 로드킬과 맞물린 사람들의 2차 사고만 14건이 일어나 2명이 숨지고, 27명이 부상을 당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