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공공부문 일선 현장의 목소리로 만드는 정책대안' 토론회 열려
 
 
 
"우체국에 삼육오클럽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집배원들이 365일 출근한다고 해서 삼육오클럽이라고 불러요. 집배원 1명당 1.5개 면의 우편물을 담당합니다. 혹여 누군가 휴가라도 가면 집배원 한 명이 2~3개 면을 맡아야 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됩니다. 지난해에도 업무상사고로 2명이 죽고 31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어요."

"소방관들이 농업용 고무장갑을 끼고 화재를 진압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정부가 예산이 부족하다며 소방용 안전장갑을 사 주지 않아 소방관들이 사비로 고무장갑을 사서 끼는 거예요. 그러곤 불 끄러 갑니다. 너무 낡아 잘 움직이지도 않는 펌프차도 불 끄는 데 동원되고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무너져 내린 공공안전, 침몰한 세월호! 공공부문 일선 현장의 목소리로 만드는 정책대안' 토론회에서 쏟아져 나온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공노총이 주관하고 한국노총이 후원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고 소방·우정·원전·교통·안전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우리 사회의 안전예방 시스템을 현장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현장 가장 잘 아는 공무원 목소리 외면"

이날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참석해 현장에서 바라본 우리나라 예방 시스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고진호 해양수산부공무원노조 위원장은 "해양사고 10건 중 8건이 100톤 미만 소형 선박에서 발생한다"며 "해양사고 감소를 위해 소형 연안 선박에 대한 집중적인 안전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에 따르면 연간 평균 966척의 선박에서 754건의 해양사고가 발생해 매년 12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인명피해를 입고 있다. 사고 대부분은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이 아니라 작은 어선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해양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형 연안 선박에 대한 예방대책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고 위원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연안 선박에 해사노동협약에 준하는 규정을 적용해 노동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 국제항해를 하는 500톤 이상 선박에만 적용되는 해사노동협약은 해상안전을 위한 선원의 근무조건 등을 담고 있다. 협약이 국내 연안 소형 선박까지 확대·적용되면 선원들의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적절한 휴게시간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고 위원장은 "국내 연안 선박에 대한 안전점검 전담인력이 없어 외국적 선박 안전점검 전담인력들이 가끔씩 돌아보는 정도"라며 "주기적인 안전점검 시스템을 구축해 선박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기 우정노조 산안본부장은 집배원 안전사고를 분석했다. 지난해 업무 중 사고를 당한 집배원은 312명이다. 이 중 2명이 사망하고 65명이 중상을 입었다. 집배원 업무상사고의 83.7%는 이륜차에 의한 사고다. 업무상사고 10건 중 3건은 눈이 내리는 한겨울(12~2월)에 일어난다. 김 본부장은 "우편물 배달 수단만 바꿔도 집배원 순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100% 차량으로 배달하고 가까운 일본도 69%만 이륜차로 배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륜차 배달이 90%에 가깝다. 김 본부장은 "이륜차는 차체 특성상 외부 안전보호 장치가 없어 충격으로 인한 사고위험과 부상 정도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소방은 공공재 … 국가직 전환 시급”

최근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소방공무원들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했다. 소방발전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고진영 전북 군산소방서 지방소방장은 "전국에 3만1천500여명의 소방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소방기본법에서 정한 소방력 기준을 맞추려면 적어도 2만4천900여명이 증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소방차에는 기본 3명이 탑승해야 한다. 1명은 화재진압차 운전과 장비를 맡고, 2명은 2인1조로 화재진압 활동을 한다. 그런데 부족한 인력 탓에 '나홀로 소방관'인 1인 소방서가 전국에 81곳이나 된다. 2008년 3월 경기 일산소방소 소속 식사119지역대에서는 1인 근무 중이던 소방관이 새벽에 홀로 화마와 싸우다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99%가 지방직으로 돼 있는 소방공무원의 직제개편도 도마에 올랐다. 고 소방장은 "소방은 대표적인 공공재"라며 "서울에 사는 국민도 시골에 사는 국민도 안전에 대해서는 똑같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만큼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사고만 터졌다 하면 안전행정 조직을 개편하는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고 소방장은 "소방관은 국민의 손과 발이지 행정조직과 행정공무원의 손과 발이 아니다"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일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바뀌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공무원조직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난대응 현장은 현장 논리로 풀어야지 책상에서 펜으로 풀 수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하겠다며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대신 소방방재청을 해체하기로 한 것에 대해 일선 소방관들의 불신이 크다는 설명이다.

소방업무와 반대로 원전방재는 지자체에 전담조직이 없어 문제다. 김관필 영광군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에 사고 수습 외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호조치 업무는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도록 돼 있지만 정작 이를 수행할 조직에 대한 구체적 명시는 빠져 있다"며 "원전업무가 국가사무란 이유로 원전이 소재한 지자체에서는 형편에 따라 두세 명의 인력만 두고 있어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공공이 바로 서야 안전사회 가능"

이날 토론회에서는 예방시스템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도 나왔다. 박두용 한성대 교수(기계공학)는 미국의 안전심리학자 피터 샌드맨의 말을 인용해 "사회적 위험(Risk)에 대한 판단은 과학적 위험요인(Hazard)과 사람들의 분노(Outrage)가 결합해 작동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과학적 위험요인은 '광우병의 발병 확률은 1천만분에 1'이라든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언급해 논란이 됐던 '연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 같은 팩트를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학적 위험요인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 위험이 주는 충격과 혐오감 또는 무력감 같은 감정과 결합해 위험을 평가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박 교수는 "일단 '이건 아니다' 싶은 판단이 선 위험은 분노로 표출되고 분노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팩트로 설명하려고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며 대중적인 분노로 표출된다"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2008년 미국 쇠고기 광우병 사태나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고율이나 재해율은 감소하는데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수준은 서서히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급격히 증가하는 변곡점이 나타난다"며 "이런 지점은 대개 소득수준이 2만달러 정도인 지점으로, 우리나라는 2010년에 이런 변곡점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수준은 '3만달러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데 안전 인프라는 여전히 1만달러 수준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리스크는 경제행위로부터 창출되는 만큼 위험을 생산하는 주체에게 위험관리 책임도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인자(수익자) 부담원칙을 확고히 하는 안전원칙을 수립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 교수는 아울러 "사회의 인프라 분야를 공공화해 이윤추구로부터 탈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서비스 특히 안전 분야는 시민의 안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공공이 바로 서야 비로소 안전사회가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