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불났던 부산 아파트, 작년 불량 소화기 시정명령
세월호 9개월 대한민국 안전보고서
① 갈길 먼 초고층 건물 화재 안전 대책
2010년 10월 부산시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에서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한 뒤 1층 현관 앞 유리지붕에 잔해가 떨어져 있는 모습. 불이 외벽을 타고 번지면서 주민 네 명과 소방관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오른쪽 아래의 작은 사진은 당시 현장에서 황급히 대피하는 주민들의 위태로운 모습.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의 주거용 오피스텔 우신골든스위트(지상 37층, 지하 4층). 2010년 10월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주민 네 명과 소방관 한 명이 크게 다친 곳이다. 불은 4층의 미화원 탈의실에서 시작돼 한 시간도 채 안돼 맨 윗층으로까지 번졌다. 당시 경찰 조사 결과 기계실 등으로 사용된 4층에는 스프링클러 등의 자동소화설비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문제가 됐던 소방시설이 개선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12일 이 곳을 찾아갔다. 외부인 출입이 차단된 곳이라 관리실에 연락하니 “주민들이 화재가 언급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 협조해 줄 수 없다”며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이 건물의 소방설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부산소방안전본부로 갔다. 지난해와 2013년의 소방점검 보고서를 구했다.
5년 전 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부산시 해운대구 우신골든스위트의 현재 모습.
2013년엔 분말소화기 미비치·피난구 유도등 불량·비상방송시스템 비정상 작동·연기 감지기 불량·방화문 불량 등이 지적 사항으로 기록돼 있었다. 지난해엔 앞서 지적된 문제는 해결됐으나 일부 소화기 불량·알람밸브(스프링클러의 물을 제어하는 장치) 불량·보일러실 화재감지기 미비 등의 새로운 문제점이 발견돼 시정명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층 건물들이 대한민국 안전의 위험지대에 놓여 있다. 초고층 건물(50층 이상)과 준초고층 건물(30층 이상)이 전국 곳곳에서 많아지면서 화재 사고가 자칫 대형 참사로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비하는 장비·제도·의식은 후진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내의 소방용 고가사다리차 중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부산에 있는 70m짜리다. 23층까지 이를 수 있는 이 장비는 센텀119안전센터에 딱 한 대가 있다. 서울에는 55m짜리가 한 대 있다. 이는 18층 정도의 높이에 해당한다.
고층 건물이 계속 솟아나는 인천 송도와 청라국제도시에도 53m짜리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차다.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은 어차피 외부에서 소방용수로 진화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아주 높은 곳까지 이를 수 있는 사다리차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국민안전처 소방정책국 관계자는 “서울시의 경우에는 70m짜리 정도를 보유할 필요성은 있다. 예산 등의 문제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높은 곳으로 물을 뿌리는 장비인 고성능 펌프차의 경우 부산에는 300m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있으나 서울에는 아예 없고, 인천에는 80m 가량에 미치는 것만 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2013년 서울시에 고층 건물 화재 진압 전문소방대 신설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에는 5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이 19개 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추가 인력 고용 등에 필요한 시 예산의 문제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각 소방서에 기존 인력으로 전문팀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우신골든스위트 사건 이후 고층 건물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센텀119안전센터를 만들었다. 그 덕에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비가 잘 갖춰져 있다. 하지만 공중살수 헬기(대당 약 300억원) 도입계획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역시 예산 문제 때문이다. 부산에는 두산위브더제니스(80층)·해운대 아이파크(72층) 등 초고층 건물이 42개가 있다.
고층 건물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시민들의 안전 의식도 문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해 5월 13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지상 41층, 지하 4층)의 화재 대피 훈련에서는 850명만 대피했다. 낮 평균 근무 인원 3689명의 23%에 해당된다. 이 건물에서 일하는 박모(43)씨는 “당시에 계단을 따라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어 깜짝 놀랐다. 실제로 불이 났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소방법에 따르면 11층 이상의 건물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이상 비상대피훈련을 해야한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닌 탓에 참여율이 저조하다.
해운대소방서의 박종욱 반장은 “대피훈련은 비상상황에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그런데도 주민 10명 중 9명은 관심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선호 국민안전처 방호조사계장(전 마포소방서장)은 “미국이나 일본에 가 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피훈련은 당연히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재 걱정을 하지 않는 게 대범한 태도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각 건물의 안전관리자가 대피 훈련 참여를 독려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고층 건물=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미터 이상인 건축물. 2012년에 제정된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그 기준이 정해졌다. 피난용 승강기와 피난안전구역 설치가 의무화 돼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건설 중인 롯데월드타워(123층)에는 다섯개 층이 피난안전구역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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