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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중앙일보의 제의로 위험사회에 대한 진단을 지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중앙일보는 당시 위험사회에 대한 이슈를 몇 회에 걸쳐 대규모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라는 책이 번역 출간되고, 벡 교수가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위험사회에 대한 성찰이 더 심도있게 이루어 졌다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어제 한 유럽연합 세미나에 참석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 속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월호 사고에 대해 패닉 상황입니다.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나고 초등대처가 미흡한 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비탄에 빠져 있습니다. 고위 공직자로 국정에 관여했던 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매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가 100명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리스크관리 컨셉과 중요성'에 대해 알리는 것입니다. 어제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위험사회와 리스크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제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위험사회의 속성과 이번 세월호 사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위험사회의 속성 중에 하나가 바로 원인제공과 손해 당자자의 인과관계가 불일치 한다는 점입니다. 수학여행 중에 배에 탄 한 학생이 세월호 침몰로 사망했습니다. 이 학생이 자신이 죽어야 할 만큼 원인제공을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연히 그 배에 탔을 뿐입니다. 그 학생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희생자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속속 알려지는 바와 같이 세월호는 안전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로 가기 위해 6000천톤급의 큰 여객선을 타면서, 그 여객선의 안전이 얼마나 보장되는 지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알아야 합니까? 아니죠! 세월호의 안전에 대한 보장은 우리 사회체계가 해 주는 것입니다. 몇 가지를 든다면, 선박안점감독기구(선급협회인가요?)가 선박의 운행안전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해경이 선박의 안전운항에 대한 통제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명문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이 학생이 자신의 안전에 관련된 복잡한 사항을 점검하지 않는 것은 사회체계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박안전관리와 항로 지원 등에 대한 사회적 통제체계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현대사회는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복잡해 졌습니다. 평범한 한 시민이 도시화/산업화가 고도로 진척된 현대사회의 모든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분업에 의해 우리 사회체계가 각 구성요소들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개인과 국가간에 일종의 협약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부패, 윤리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다음은 잔여리스크의 수준입니다. 선진사회라고 해도 물론 위험사회의 속성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위험을 잔여리스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현대사회의 복잡성이 가지고 있는 전체 리스크를 사회통제라는 체게를 통해 상식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만큼으로 낮추어 주기 때문입니다. 통제는 물론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통제비용 대비 위험경감의 비율이 효율적일 때까지만 이루어 지게 됩니다.
 
국민소득이 높은 성숙사회와 그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 미성숙 사회의 차이점은 바로 이 효율성의 허들에 있습니다. 통제비용 대비 위험경감의 함수관계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어느 정도 수준까지 통제를 실행하는데는 단위당 효율이 매우 높습니다. 들어간 돈에 비해 효과가 매우 크게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점차 통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이 단위당 효율은 체감합니다. 돈을 더 들여도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성숙한 사회와 미성숙한 사회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 잔여리스크의 수준에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하나 들어 봅시다. 제가 유럽에 있을 때 북유럽 가족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벤하겐에서 여객선을 타고 오슬로까지 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오후 5시에 승선을 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오슬로에 입항했습니다. 4인 가족과 승용차에 대한 운임이 매우 비쌌습니다. (아래 사진은 코펜하겐 항구에 정박해 있는 그 여객선입니다)
 
 
왜 그렇게 비쌀까요? 물론 물가가 비싼 유럽이니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바로 이 비용에는 유럽 성숙사회의 잔여리스크를 낮추는 사회적 비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배을 띄우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비용, 예를 들면, 배의 안전을 점검하고, 항해를 지원하고 통제하는 등 위험사회(이렇게 큰 배를 띄우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를 관리하는 비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사회 안전체계에 대해서는 예외도 없고 정말 까다롭고, 전문성이 뛰어납니다. 물론 이를 위한 비용도 당연한 것으로 감수합니다. 세상에는 공짜 점심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위험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원인제공자냐 아니냐에 무관하게 재수없게 엄청난 재난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구지하철 폭발사고 때 희생자가 그랬고 삼풍백화점에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갔던 평범한 가정주부가 그랬고, 이번 세월호의 수학여행 학생들도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선진사회가 100년 이상의 긴 시간동안 이룩한 도시화와 산업화를 그 1/2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이룩했습니다. 그 과정에 성장을 앞세웠던 적이 있었고 미쳐 위험관리체계를 경제성장 수준에 맞추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위험성이 훨씬 높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입니다.
 
위험사회를 제대로 management(관리)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사회적 비용(여기서 제가 비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화폐적 비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넓은 의미입니다. 나아가 희생자들의 귀중한 생명을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습니다.)을 지불하게 됩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수 많은 아까운 생명을 잃었습니다. 한국사회에 대한 세계적 신뢰가 매우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은 중화학, IT 등 경공업이 아닌 복잡한 기술과 연결된 제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위험사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이런 risk event가 지속된다면, made in korea에 대한 브랜드 가치가 손상됩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고로 5000만 국민이 느끼는 참담함, 비통, 사회체계에 대한 자신감 상실과 불신 등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손실입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우리나라 연안 여객수요는 급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족도 울릉도를 곧 다녀올 계획이 있었는데, 아마도 몇 년간을 장거리 여객선을 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도시화, 산업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달리 유래가 없는 고도의 위험사회입니다. 매우 전문적이고 정교한 사회위험관리 체계가 필요합니다. 수년 전 서울시의 위험관리체계 시스템 구축 작업에 자문위원으로 관여한 적이 있습니다. 국장급으로 아직 서울시 공직을 수행하는 지인의 말을 들으니, 이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 지고 정보도 더 많이 축척되어 서울시의 위험관리체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서울시의 위험관리체계가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홍보하곤 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글 (손실데이터 관리와 세월호 사고)에서 상세히 언급할 예정입니다만, YS 정부 이후 숱하게 발생했던 대형 재난사고의 결과가 그 이후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국가재난관리 체계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국민TV라디오 김진의 시사돌직구 4월 21일 전 국가홍보처장 김창호라는 분의 인터뷰 내용을 들으니 (방송들은 기억 만으로 이글을 쓰므로 사실관계 정확한 확인 필요, 그러나 맥락은 맞습니다), 이 국가위기관리체계가 MB정권 때 지난 정부의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대부분 사라졌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장이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앞으로 이 국가위기관리 체계 (위기관리 기본체계는 조직, 전문인력, 규정, 프로세스, 시스템 입니다)가 재개되고 개선되어야 합니다.
 
(위의 국가위기관리체계 해체와 관련해, 작년에 돌아가신 위기관리 전문가 안철현 박사가 생각이 납니다. 이 분도 이 국가위기관리체계 구축에 참여했던 전문가였습니다. 안철현 박사도 이 때 직장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정확한 사실은 지금은 확인할 수는 없음. 같은 위험관리 전문가로서 서울시 프로젝트 자문위원을 같이 했었고, 함께 일을 하기위해 여러 번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 분은 위기관리 연구소를 만들고 대학강의를 하며 근근히 활동하다가 암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살아계셨더라면 이번 사고에 대해 많은 교훈을 주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