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국가 어젠다 바꿨다
국가적 재난은 국가 어젠다도 바꾼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 이후 일본이 대표적이다.
“테러리스트의 궤멸은 전통적인 전투기술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 ‘공공외교’는 군사력만큼이나 중요한 수단이다.” 2년가량 활동한 미국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가 내놓은 테러에 맞설 해법은 공공외교였다. 외국 국민에게 자국의 문화·가치·비전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킴으로써 외교관계를 증진시키고 국가 영향력을 키우자는 것이 공공외교의 핵심이다. 
본토가 공격당한 뒤 미국은 아랍권에 만연한 반미주의의 심각성과 이에 대응할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공공외교는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재난이 미국의 변화를 이끌어 낸 셈이다.
9·11 테러 조사위는 사건 발생 442일 뒤인 2002년 11월 27일 발족했다. 여당인 공화당, 야당인 민주당 인사들이 함께 참여한 독립적 형태였다. 2004년 7월 22일 최종 보고서를 내놓기까지 1200여 명을 인터뷰하고 자료 250만 쪽을 검토했다.
보고서에는 알카에다를 배후로 지목할 각종 증거도 담았다. 하지만 조사위가 무게를 둔 것은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이었다. 조사위는 정부·의회 등 모든 기관의 실패 가 결국 테러로 이어졌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알카에다’란 테러 주체가 명확히 있는데도 근본적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데 더 집중했다. 조사위는 권고사항으로 공공외교 강화를 가장 비중 있게 제시했다.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한 공공외교는 당시만 해도 실행에 옮기기 힘든 책 속의 이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랍권 무슬림의 증오가 사상 최악의 테러로 현실화하자 공공외교가 해결책으로 부상했다.
이후 미국은 국무부에 ‘공공외교 및 공보 담당 차관직’을 신설하는 등 공공외교 총괄 조정체제를 구축했다.
9·11이 미국을 변화시켰다면 고베 대지진은 일본을 바꿨다. 지진 발생 직후 정부는 무기력했으나 시민들은 달랐다. 자원봉사자 130만 명이 2개월 이상 구조작업에 힘을 보태며 저력을 보여 줬다. 관 우위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일본이 정부 역할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시민사회 세력의 성장을 받아들였다. 98년 일본 의회는 비영리단체법 제정을 통해 시민사회단체들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2008년 연말 결산호에서 “95년 고베 대지진과 지하철 독가스 살포사건은 일본인들에게 원폭 때와 맞먹는 충격을 줬다. 하지만 기존의 ‘일본 모델’이 최후를 맞이하며 일본 열도는 진정한 탈바꿈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도 요즘 관피아(관료 마피아)의 사슬을 끊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개조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일본처럼 과거의 적폐를 해소하는 쪽으로 국가 어젠다를 전환하는 게 그나마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험사회를 연구해 온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우리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30~40년 전부터 고착돼 온 관피아 같은, 시스템 내의 수많은 비리를 극복하고 국가의 지향점을 안전사회로 돌리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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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행정개혁에서 배우는 지혜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