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은 보험산업과 성장을 같이한다. 기술진보는 새로운 리스크를 창출하고 보험은 변화된 환경에 맞춰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진화된 보험 덕분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관련 상품의 대중화가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과학기술 수준이 높고 경제규모가 큰 미국이 세계 최대 보험대국인 것은 당연하다.

보험산업을 발전시키는 또 다른 축 하나는 자연재해와 같은 불가피한 재난의 발생이다. 태풍,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는 일본의 보험산업이 미국에 이어 부동의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세계 8위권의 보험강국으로 진입했다. 세계 7위의 무역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수준이다. 지난 60년간 우리의 경제와 보험은 서로를 이끌고 밀어주면서 성장해 왔으며, 자연재해와 같은 재난사고에 있어 사회안전망의 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2012년 부산 노래방 화재와 구미 불산 누출,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 등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후대책의 하나로 관련 보험가입을 의무화 하는 법안이 제정되거나 개정돼 보험이 재난사고에 있어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사고와 세월호 참사, 버스터미널 화재 등 후진적 인적 재난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근원적 원인파악과 대책마련에 국가적 차원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아울러 보험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제고되고 있다.

보험은 각종 재난사고에 있어 사전적으로는 위험관리를 통해 사고발생을 줄이고, 사후적으로는 경제회복 지원 역할을 수행하므로 주요 사회안전망임에 틀림이 없으며 영리적 속성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약관과 요율체계 곳곳에 사회적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갖추어져 있다.

보상한도를 초과하더라도 손해방지에 지출된 비용을 전액 보상하여 사회적 손실이 최소화되도록 하고 있으며, 보험요율 측면에서도 각종 안전장치를 장착할 경우 실제 피해감소 효과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할인해 줌으로써 손해예방에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은 기본적으로 사후적이고 경제적인 제도이다. 경제적 지원이 위로는 될지언정 가족을 잃은 애통함은 금전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안전후진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안전규정과 제도강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부리로 껍질을 쪼아대는 것을 줄(?)이라고 한다. 반대로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돕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줄탁동기(?啄同機)가 이루어져야 병아리가 알에서 나올 수 있다.

후진적 인적 재난사고를 줄이고 안전후진국의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안전규정과 제도강화의 정착이 필요하며 보험산업도 이에 맞춰 보험제도를 강화하여 함께 껍질을 쪼아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권흥구 보험개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