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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위험 도로시설물 '나 몰라라'

지자체들, 예산부족·안전불감증에 그대로 방치
등주별로 누전차단기 설치,만약의 사태 예방해야

○···1990년 9월 11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2동 길가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이 모씨 등 3명이 폭우로 길가에 쓰러져 있던 가로등 전선에서 흘러나온 전류에 감전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991년 7월 15일 군복무 중이던 허 모씨는 폭우로 1m 정도 침수된 부산 동래구 수안동 도로를 지나다가 인근 가로등에서 누전된 전기 때문에 감전사했다.

○···1994년 7월 16일 부산시 금정구 남산동의 S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윤 모군(5세)은 온 몸에 전기화상을 입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윤 군은 놀이터 옆에 설치된 철제 가로등과 울타리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 1998년 9월 23일 서울 양천구 신월3동 Y중학교 철조망 담장 밑에서 인근에 살던 박 모양(9세)이 감전돼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박 모양은 학교 교문이 잠겨 있자 철조망 밑으로 빠져나오다가 담장 옆에 설치된 가로등에 감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1990년대까지 전기가 새는 가로등이나 신호등에 몸의 일부가 닿아 감전되는 사고는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인재(人災)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종류의 사고는 그저 벼락을 맞아 사망하는 사고처럼 ‘억세게 재수 없는 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이 시대의 안전불감증은 그러나 2001년 7월 15~16일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도로가 침수되면서 19명이 감전사고를 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낳게 한 단초가 됐다.

서울 서초동 진흥아파트 앞 인도와 신림8동 강남아파트 앞 도로 등 서울시내 4곳과 인천 작전1동 작전체육공원 주변, 경기도 광명시 광명2·4동 도로변 등이 처참했던 사고의 현장이었다.

당시 사고 원인으로는 시간당 최고 99.5mm에 달했던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도로가 침수된 상황에서 가로등에는 누전차단기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관리기관이 누전위험이 높은 가로등에 대한 전력차단 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았던 점이 지목됐다.

역사상 유례없는 가로등 감전사고가 발생하자 정부와 지자체는 모든 분전함에 누전차단기를 설치키로 하는 등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고, 재발방지를 다짐했다.

하지만 2001년의 악몽이 일어난 지 13년이 지난 2014년. 도로에 설치된 수많은 가로등은 과연 안전할까.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강후 의원(새누리당)은 지난해 10월 전기안전공사 국정감사에서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가로등과 신호등 등 전기시설물 2만5589개가 감전위험에 노출된 채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2만5589개의 전기시설물은 전기안전공사의 안전점검에서 누전과 과전류 때문에 부적합으로 판정돼 개선권고를 받았지만 지자체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가로등과 신호등이다.

문제는 지자체들이 예산부족을 핑계로 감전사고 가능성이 있는 도로시설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4년 윤 모군과 1998년 박 모양의 사례처럼 가로등의 누전으로 인한 감전은 집중호우로 도로가 침수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다.

때문에 전기안전공사의 안전점검에서 부적합판정을 받은 전기시설물의 경우 관리자(지자체)는 사후조치를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행정당국에 보고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강후 의원은 지난해 전기안전공사 국감에서 “불량 가로등이나 신호등 같은 전기시설물을 보수해야 할 지자체가 스스로에게 개선명령을 내리고도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감전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누전차단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1년 수도권에서 발생한 대규모 가로등 감전사고 이후 정부는 가로등 분전함(제어함)에 누전차단기를 설치하도록 법제화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개별 가로등주는 누전차단기 의무설치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개별 가로등주에서 발생한 누전현상을 멀리 떨어진 분전함의 분기회로에 설치된 누전차단기가 인지하지 못할 경우 가로등 감전사고 발생가능성이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가로등 분전함의 누전차단기가 개별 가로등주의 누전을 인지했어도 전력공급을 차단하기 전에 사람이 가로등에 접촉되면 감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개별 가로등주에서 누전이 발생한 경우 제어함에 설치된 누전차단기가 이를 인지할 수 있지만 만약 개별 등주마다 누전차단기를 설치하면 바로 전원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면서 “또 정확한 누전지점을 찾을 때 소요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모든 부분에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부분만큼은 (규제를) 강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어떤 문제이든지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이 정도면 안전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하루빨리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