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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3시 30분 부산 사하구 다대항 성창부두. 동이 트려면 아직 수 시간이 남은 상황이지만 낚시점 10여 곳은 전국 각지에서 출조 차 온 낚시꾼 수백 명으로 북적였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부산해경과 함께 11, 12일 이틀에 걸쳐 부산 사하구 다대항 일대 낚싯배 현장 점검에 나섰다. 평일 200~300명, 주말에는 750 명 이상의 낚시꾼들이 몰리는 다대항은 부산에서 낚시 어선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지역. 민·관 협력을 통해 안전관리가 비교적 잘 이뤄지는 곳으로 꼽히지만, 현장의 안전 의식은 추자도 사고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설마 사고 나겠어" 안전불감 여전
 
다대해경안전센터에 출항신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3시. 조업을 나가는 어선은 오전 3시, 낚싯배는 오전 4시부터 시차를 두고 출항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포인트' 선점을 위해 출항을 서두르다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이날 하루 동안 다대항에서 선박 112척, 어업인과 낚시꾼 577명이 일사불란하게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는 배에 출조 때와 다른 승선원 
"낚시꾼들 선장 지시 안 따르는 분위기" 
낚시꾼 수백 명 몰리면 점검도 역부족
 
다대항에서 만난 낚시꾼들은 불과 엿새 전 추자도 사고에도 '먼 산 불 보듯'한 모습이었다. 이날 돌돔잡이에 나선 한 50대 낚시꾼은 "사고가 나도 그때뿐, 낚시 다니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 안전장비도 모두 있으니 별일 없을 것"이라며 태연해 했다. 
 
10여 년 경력의 선장 이길우(61) 씨는 "포인트를 뺏기면 안 된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과속을 재촉하거나, 선장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낚시꾼들도 여전하다"면서 "그나마 추자도 사고 이후엔 낚시꾼들이 선장의 지시를 좀 더 신경 써서 따라주는 편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얼마나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승선원 명부 부실기재 만연
 
오전 3시 40분. 한 낚싯배가 출항 신고와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를 보내자 부두에 대기 중이던 해양경찰관이 배 위로 올라탔다. 출항신고 시 제출한 승선원 명부, 과적과 과승(過乘), 음주 운항 여부 등을 확인받은 낚싯배는 이내 캄캄한 바다를 가르고 항구를 떠났다.
 
부산해경 관계자는 "낚시꾼 수백 명이 일시에 좁은 항구로 몰려들면 아무리 철저히 점검해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다대항은 매일 새벽마다 현장에서 점검하고 있지만, 상당수 소규모 항포구에서는 신고서에 도장만 찍어주는 것으로 출항 신고를 갈음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대항에서도 귀항하는 배에 대해서는 안전점검이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낚시꾼들이 출조할 때와는 다른 배를 타고 항구로 돌아오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낚싯배들 사이에 관행처럼 이뤄지는 이 같은'승선원 이원(移員)'은 돌고래호 사고 때처럼 승선원 명부 불일치로 인한 구조의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한번 출항에 드는 20만 원 가량의 유류비를 아끼기 위해 적정 인원보다 많은 낚시꾼을 한꺼번에 태우는 과승 역시 해난 사고에 있어 '암초'같은 존재다.
 
■무용지물 된 선박패스(V-Pass)
 
일부 낚싯배들이 자신의 '포인트'를 관리하려고 일부러 어선위치발신장치인 '선박패스(V-Pass)'를 끄는 행태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장이 주변 선박에 탄로 날까 봐 장치를 일부러 꺼버리는 것. 이른바 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를 잘 찾는 선장을 중심으로 단골이 형성되는 업계 사정이 반영된 문제이기도 하다. 
 
V-Pass 시스템은 해양사고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배의 위치와 긴급구조신호를 감시할 수 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시범 운영단계로, 현재 설치기준과 운영 등에 관한 고시 외엔 입법된 사항이 없다. 강제로 켜야 하는 의무 규정조차 없는 상황이다.
 
장비를 다루는 데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아예 장치를 꺼버리는 선장들도 있다. 일부 선장들은 장비 미작동에 따른 선박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려는 해경의 모니터링 전화를 무시해버리기도 한다.
 
해경 관계자는 "일부 어선은 공식 출항신고시간보다 더 일찍 바다로 나서기 위해 아예 V-Pass를 끈 상태로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이럴 경우엔 배가 다시 항구로 들어올 때까지 조난 여부를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