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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전을 위한 국가 개조가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검찰 수사도 난항을 겪고 있고, 국가 개조 수준이라던 조직 개편과 개각도 동력을 잃어버렸다. 재해나 사고에서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은 요란한 구호를 앞세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사회 안전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만 가능한 일이다.

국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은 선진국 진입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민주화되어도 참혹한 인재(人災)가 반복되는 사회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회 안전망 구축에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안전시설을 유지 관리하는 일차적인 책임이 정부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한 투자도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그래서 정부가 국민 안전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의 사회 안전망이 온전하게 정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와 시설이라도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지적되는 위기대응 매뉴얼의 경우가 그렇다. 우리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에 대비한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25개를 포함해서 무려 3000개가 넘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 그런 매뉴얼이 모두 부실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아무도 매뉴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애써 만든 매뉴얼은 국민 안전이 아니라 재난현장에서 땀 흘린 공직자의 문책용으로 활용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안전을 위한 시설과 제도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바꿔야 한다. 안전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상당한 수준의 불편과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험할 수밖에 없는 비행기의 탑승 절차가 대표적인 경우다. 비행기의 안전 운항을 위해서는 모든 승객이 복잡하고 불편한 보안 검색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하고, 위급 상황에서의 대처 요령에 대한 지루한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아야만 한다. 안전을 위한 시설과 제도를 불필요한 낭비와 규제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안전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문명사회의 보편적 윤리 규범이 지켜지는 신뢰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위급 상황에서는 누구나 어린이, 노약자, 여성이 먼저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질서 유지를 위한 승무원의 안내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선진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 규범이다. 안내 방송을 충실하게 따랐던 학생과 교사들이 가장 많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정말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을 독립된 교과로 가르치고, 교사들에게 준(準)안전전문가 자격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교육부의 대책이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매뉴얼을 외면하는 사회에서 형식적인 안전교육은 무의미한 것이다.

피해 보상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기업의 부주의와 실수에 의한 피해의 경우에는 보상 주체가 분명하다. 그러나 자연 재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세금으로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검토가 필요하다. 오히려 보험과 같은 사회적 보상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국민 안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언론을 통해 모금되는 성금의 규모와 용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무분별한 성금의 모금과 사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의 정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물론 안전을 위한 노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재난과 사고를 예방하고,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위험은 어제오늘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