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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2009년 1월 15일, 오후 3시26분 승객 155명을 태운 US 에어웨이 1549여객기가 미국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한 지 1분 만에 엔진이 멈추는 사고가 일어났다. 자칫 초대형 추락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기장의 기지로 이들 모두를 구조해낼 수 있었다. 기장은 뉴욕 허드슨 강 비상착륙을 감행했고 비상착륙 전 관제탑과 연락을 취해 추락 후 3분 만에 뉴욕항만청은 신속한 재난대응시스템으로 현장에 헬기와 구조선을 급파해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무사히 구출했다.

#2. 역시 같은 해 11월 13일 새벽 5시6분, 승객 7명과 승무원 21명이 탑승한 채 일본 도쿄에서 가고시마를 향해 운항하던 여객선 아리아케호가 왼쪽 선미가 파도로 갑자기 오른쪽으로 25도 기울면서 침몰 상황에 처했다. 이때 선장은 자신이 총지휘를 맡고 조타와 승객 안내 등 각 승무원의 역할을 분담했다. 구조당국인 해상보안청에 헬리콥터 구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국제 초단파 무선송신장치인 'VHF 통신기'를 통해 조난 신호를 보냈다. 사고 발생부터 구조 요청까지 16분밖에 걸리지 않은 모범적인 구조사례로 기록됐다.

앞의 두 사례는 말 그대로 안전사고 등에 대한 대비와 대응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남의 나라 얘기'다.

그런데 이들 안전 선진국도 하루아침에, 그것도 '말로만' 이 같은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고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부단히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 부단한 안전의식 함양에 끊임없는 반복훈련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의 사건 대응과 결과에 대해 안전에 대한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잘 갖춰진 재난대응시스템과 끊임없는 반복된 훈련에 따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1년 9.11테러 당시 관할 소방서장을 현장 책임자로 투입했지만 구조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된 이유도 평상시 훈련을 통해 이 같은 시스템을 잘 정착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중심으로 모든 재난을 관리하고 있다. 연방재난관리청은 28개 연방정부 기관은 물론 적십자 등 민간기구까지 총괄하는 재난.재해 담당 독립기관으로 모든 사고 수습 가이드와 지원체계를 마련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일본은 빈번한 태풍과 지진 등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난 관리 및 대응과 긴급구조 체계가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안전 관련 '매뉴얼 천국'으로 오히려 관련 매뉴얼이 지나치게 잘돼 있어 특별한 상황에 따른 대응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다.

일본은 총리가 의장을 맡는 '중앙방재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시민들도 각종 재해를 모의체험할 수 있도록 시민방재센터를 운영 중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시민들이 실제로 각종 재해를 모의 체험하면서 재해 예방에 대한 지식.기술.행동력을 익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전과 재난 훈련을 생활화하고 있다.

 
■ 한국, 경제는 선진국 안전은 후진국

이처럼 세계 각국은 현장위주의 재난구조 대응체계 구축에 심혈을 쏟으면서 대형재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안전의식 수준은 물론 대비 및 대응시스템은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964년부터 2013년까지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총 276건에 달한다. 우리나라에는 3500건이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지만 이번 세월호 사례에서 보듯 현장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전시성의 서류상' 매뉴얼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안전시스템 수준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성대 박두용 교수는 "우리나라는 소득수준(경제발전)에 비해 안전보건 수준은 낮은편"이라며 " 따라서 국민들의 요구수준은 이미 2만5000달러를 넘어 3만달러 수준인데 사회 전체의 안전인프라(인력, 기술, 법, 제도, 재원) 수준은 1만5000달러 수준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그 간극만큼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가 최근 소득수준과 안전 수준을 비교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환경안전보건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수준은 국민소득 수준에 비례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되면 '환경 일반화'가 되기 시작한다. 일반화된다는 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환경의 중요성이나 의의를 알기 시작해 각자의 여건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투자를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환경에 대한 권리의식도 자리 잡기 시작한다.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에서는 '안전일반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일반시민들이 안전에 대해 투자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안전에 대한 의무와 권리의식이 신장된다. 가령 자동차 구입 시 안전을 고려해 에어백이나 ABS브레이크, 사륜구동 등 안전관련 비용을 기꺼이 더 지출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까지 사고가 나면 개인의 불운이나 불행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하는 태도가 대체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았지만 2만달러 수준에서는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현상도 급증하며 점차 개인의 사회적 권리 요구 수준이 높아진다.

또 대규모 인적 재난이 발생하면 그 전까지는 추모분위기와 사회적 부조분위기(성금모금) 등이 주류를 이루던 분위기에서 분노와 책임소재 규명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아울러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서는 '보건 일반화' 현상이 자리 잡아 안전보건에 대한 의무와 권리의식이 높아진다. 우리사회는 현재 2기와 3기의 중간단계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신적·심리적 요구수준은 이미 3만달러 수준에 도달하며 재난에 따른 사회적 인식이 이전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허드슨강의 기적' 지난 2009년 1월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운 US에어웨이 여객기가 미국 뉴욕 라과디아공항을 이륙한 지 1분 만에 엔진이 멈추는 사고가 일어났다. 허드슨강에 비상착륙한 기장의 과감한 대처와 뉴욕항만청의 신속한 재난대응시스템 덕분에 승객·승무원 모두 구조됐다. 당시 비상착륙한 여객기에서 승객들이 탈출하고 있다.

■ 경제수준 걸맞은 안전시스템 구축 시급

사회가 발달할수록 재해율이나 사고율 자체는 서서히 감소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거시적인 지표로 보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재해율이나사망률, 사고율은 감소하는 추세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년 대비 6.5% 감소하고 풍수해.대설 재산피해가 지난 10년 평균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사망 중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 비율이 1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요구수준은 서서히 증가하지만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안전인프라와의 간극이 커지는 변곡점 현상이 발생한다. 대개 소득 수준 2만달러 정도의 지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우리의 경우 2010년 전후로 이런 현상이 분출하고 있다. 한번 변곡점을 지나면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수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이런 안전요구 수준이 올라가는 것만큼 안전수준은 이에 못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후설비화의 증가와 안전시스템의 취약, 사회시스템의 비정규직화, 외주화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사회 안전망이 허약해진 결과다.

1990년대부터 진행된 규제완화 일변도 정책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김영삼정부부터 현재 박근혜정부까지 산업안전에 대한 규제완화 분위기 속에 무차별적인 규제완화가 이뤄지면서 안전에 대한 경고등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재난이 대규모 복잡화하는 와중에 정보기술(IT)이 본격 도입됨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한층 커진 것도 위험을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사소한 잘못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험사회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안전에 관한 변화양상은 새로운 체제로 돌입했다는 신호이며 이제 안전은 다른 패러다임이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국가 안전대책은 햐향식 국가계획 성격을 띠고 있어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민간이 재난리스크에 대처할수 있는 역량을 키울수 있도록 수혜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 국민이 공감하는 상향식 안전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