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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는 말이 있다. ‘명문가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검’이라는 뜻이다. 가족 가운데 집안에 누가 되는 행동을 범했을 때 처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전통을 지키는 보배인 셈이다. 요즘은 부정적인 상황에 더 많이 쓰인다. 꼭 필요한 때에만 사용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걸핏하면 휘둘러대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사고가 날 때마다 등장하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안전불감증(개인적으로 사고 또는 위험 불감증이 맞은 말이라고 생각함)이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은 안전불감증으로 결론 내려진다. 지난 21일, 20주년을 맞은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원인도 안전불감증이요, 6개월 전 국민을 비탄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의 원인도 안전불감증이었다. 지난 17일 27명의 사상자를 낸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원인도 안전불감증으로 귀결되고 있다.

차이는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부실 공사와 부실 감사, 미흡한 안전 검사 등이 겹쳐 일어났다. 상판이 무너지면서 추락해 숨진 등굣길 학생 등 49명의 사상자는 안전불감증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졸지에 당한 참사인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도 마찬가지다. “안전을 위해 대기하라”는 선장과 선원들의 말을 믿고 따랐을 뿐이다. 이에 비해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의 경우 희생자들의 책임도 적지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애초 사람이 올라가서는 안 되는 곳이고, 위험 경고도 외면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난 뒤에 항상 따르는 말이 ‘…했더라면’이다. 이처럼 허망한 일도 없지만 필름을 돌려보자. 가정에는 끝이 없지만 희생자들이 환풍구에 올라가지 않았다면에서 출발한다. 안전요원을 정상적으로 배치했다면, 환풍구의 높이가 2ｍ가 넘었다면, 안전펜스를 제대로 쳤더라면 그들이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정부가 적정한 규정을 만들고, 제대로 관리 감독했다면, 기준이 미비하더라도 좀더 튼튼하게 시공했더라면 사람들이 올라갔더라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분명한 점은 수많은 가정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챙겼어도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고는 수많은 설마가 모인 결정체다. 안전불감증의 뿌리는 설마이다. 먼지처럼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구조화된 방심이자 일상화된 방심 속에 먼지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100번 아무 일이 없다가도 101번째 일어나는 것이 사고인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국민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안전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5%가 안전의식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를 지수화할 경우 100점 만점에 17점으로 2007년(30.3점)에 비해 하락했다. 연이은 사고에도 안전의식은 오히려 후퇴한 셈이다. 안전불감증 타령으로만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시스템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수요자를 우선하는 시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판교를 비롯한 수많은 사고가 공급자의 시각에서 접근한 점이 근본 원인이다. 건설은 더욱 절실하다. 국민생활과 하루, 한시도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얼마를 들여 언제까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떻게 사용하고 생활하게 될지에 대해서 더 많은 고려가 있어야 한다. 때론 고객을 바보로 가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장이 발생했을 때 전체 재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풀프루프(fool proof)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발굴하고 반복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매뉴얼화하는 등 시스템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 안전불감증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문제를 키우는 낡은 칼일 뿐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사고를 줄이는 출발이다.